부끄러운 얘기 하나 먼저 합니다.
저는 철학과 사상 등, 이런 인문학적인 지식을 복음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결코 화려한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는 자기 비움이고, 자기 낮춤이고,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내 안 깊은 곳에 교만의 뿌리가 있어, 근본에서부터 이 십자가를 밀어내려고 하는 죄성을 느낍니다.
저에게 있어 십자가는 칠흑입니다.
십자가 뒤의 부활은 금빛찬란한 아름다운 세계이지만, 십자가라는 것은 끝없는 어둠으로만 느껴집니다.
이에 반해 철학과 사상은 매우 화려합니다.
이성은 빛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십자가가 어두움의 끝이라면,
이런 철학들은, 철학에 담겨 있는 논리, 수사는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과 같은 존재들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철학을 복음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이것이 늘 저에겐 큰 과제였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자로서, 복음보다 다른 것에 더 마음이 가 있으니 말입니다.
말씀을 볼 시간에 철학책을 더 읽고,
진리를 묵상할 시간에 다른 철인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는 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또 제대로 사랑하려고 할 때였습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나의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지 않습니까?
사랑은 중심이동입니다.
사랑을 하면, 내 생각과 감정과 행동의 모든 초점이 나에 있지 않고 상대방에게 있게 됩니다.
이 마음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더니, 정말 그 사람에게 잘 해주고 싶었습니다. 정말로 내 모든 사랑을 다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마치 물과 같아서, 수로를 따라 흐르지 않으면 홍수가 되어 만물을 파괴합니다.
그래서 올바른 방법으로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제대로 사랑하려 하다보니,
내가 봐 왔던 많은 철학과 사상들은 모두 겉만 화려한 허울 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뭔가 크고 위대한 것을 얘기하지만,
속이 없는, 비확실한 것들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이 십자가.
이것이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임을, 이 칠흑 같은 것 가운데 나의 진정한 기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실체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복음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위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제대로 누구를 사랑하고자 할 때, 이런 필요성을 느낄 때 진정 복음의 위대함을 실감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아울러 아래 성경구절이 생각납니다.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을 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보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복음이 보이게 되는 거 같습니다.
귀한 깨달음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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