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얘기 하나 먼저 합니다. 저는 철학과 사상 등, 이런 인문학적인 지식을 복음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결코 화려한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는 자기 비움이고, 자기 낮춤이고,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내 안 깊은 곳에 교만의 뿌리가 있어, 근본에서부터 이 십자가를 밀어내려고 하는 죄성을 느낍니다. 저에게 있어 십자가는 칠흑입니다. 십자가 뒤의 부활은 금빛찬란한 아름다운 세계이지만, 십자가라는 것은 끝없는 어둠으로만 느껴집니다. 이에 반해 철학과 사상은 매우 화려합니다. 이성은 빛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십자가가 어두움의 끝이라면, 이런 철학들은, 철학에 담겨 있는 논리, 수사는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과 같은 존재들로 여겨졌습니다. 그래..